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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연 작가, ‘자리’의 구조로 읽는 관계의 리듬

권수연 작가의 작업은 ‘무엇을 그렸는가’보다 ‘어떤 구조를 세웠는가’에서 시작합니다. 일상의 환경 속에서 우리가 무심히 통과해 온 질서, 반복, 배열의 규칙. 작가는 그 규칙을 하나의 분석 단위로 붙잡고, 개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리듬을 시각 언어로 바꿉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성립시키는 틀입니다. 분위기를 만들고, 거리를 정하고, 관계의 가능성을 열거나 닫는 보이지 않는 프레임. 권수연 작가는 회화와 반부조를 오가며 그 프레임을 눈앞으로 끌어올립니다. 익숙했던 장면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내가 믿어온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

기준에서 살짝 벗어난 구조가 만들어내는 감각

Untitled, 2025, Acrylic on wood, 61 x 45.5 cm

권수연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구조’입니다. 안정과 불안정, 중심과 주변, 다수와 소수 같은 사회적 감각은 종종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은 차이에서 발생하죠. 작가는 그 미세한 차이를 ‘형태’가 아니라 ‘구조의 조건’으로 다룹니다. 간격이 달라지면 시선이 달라지고, 높이가 바뀌면 관계의 위계가 달라지고, 수평이 조금만 기울어도 몸은 긴장합니다.

그래서 권수연 작가의 화면은 설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배치가 왜 이렇게 느껴지지?”라는 감각을 먼저 열어 둡니다. 그리고 그 감각이 곧 사회를 읽는 언어로 이어지게 합니다.

앤트체어에서 시작된 질문, ‘자리’라는 가능성의 형태

Untitled, 2025, Acrylic on wood, 27x35cm

권수연 작가가 오랫동안 붙들어온 출발점 중 하나는 Fritz Hansen의 ‘앤트체어(Ant Chair)’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전형적인 기준(네 다리)에서 살짝 비껴난 세 다리 구조는, 보기엔 작고 단순한 차이지만 주변의 반응과 거리감을 바꿉니다. 작가는 그 어색함이 오히려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고 말합니다.

이때 ‘의자’는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정상으로 두고 무엇을 예외로 밀어내는지 드러내는 장치가 됩니다. 그리고 질문은 자연스럽게 의자에서 ‘자리’로 이동합니다. 자리는 앉는 위치가 아니라, 누군가가 사회 안에서 점유할 수 있는 가능성의 구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목재 작업으로 드러나는 관계의 규칙

Untitled(Autumn), 2024, Acrylic on wood, 50 x 72.7 cm

권수연 작가의 주요 재료인 목재는 흥미로운 대비를 만듭니다. 단단하고 분명한 물성이 구조를 ‘확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 얹히는 감각은 오히려 더 민감해집니다. 반복되는 배열 속에서 우리는 묻게 되죠. “이 질서는 누구를 편하게 만들고, 누구를 긴장시키는가?”

작가는 개인의 경험을 직접 고백하기보다,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사회적 감각—익숙함과 낯섦, 동의와 거리두기, 편안함과 불편함—을 구조로 환원합니다. 그래서 작품은 특정 이야기로 닫히지 않고, 보는 사람의 생활 감각과 맞닿아 열립니다.

빈 자리의 잠재성, ‘부재’가 만드는 새로운 공존

Untitled(Winter), 2024, Acrylic on wood, 50 x 72.7 cm

최근 권수연 작가의 시선은 ‘빈 자리’로 확장됩니다. 기대되는 기능이 사라진 자리 구조는 결핍이라기보다, 다른 관계가 들어올 수 있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아무도 앉지 않는 자리, 남겨진 구조, 의도적으로 비워진 공간은 주변 환경과 새롭게 얽히며 인간 중심의 관계를 넘어서는 장면을 만들기도 합니다.

조용하지만 중요한 변화입니다. 소수성과 균형의 문제는 더 넓은 공간적·생태적 맥락으로 확장되고, ‘자리’는 한 존재의 위치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의 구조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권수연 작가의 작업은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구조—자리, 간격, 기준—가 얼마나 많은 관계를 결정해 왔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지금, 작품 앞에서 한 번만 더 천천히 서 보세요. 그 구조가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서, 당신의 자리 감각도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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