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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호 작가, 진주가 부딪히는 순간에 남는 감정의 파동

이미호 작가의 회화는 아주 작은 소리에서 시작된다. 고요한 공간에서 진주 하나가 또르르 굴러가며 남긴 울림. 그 소리는 생각보다 선명했고, 잠깐이라도 하던 일을 멈추게 했다. 매끈하고 완벽해 보이던 표면이, 부딪히는 순간에야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는 사실이 묘하게 남았다.

그래서 이미호 작가에게 진주는 장식이 아니라 사건이다. 관계와 감정이 닿고 어긋나는 찰나, 보이지 않던 긴장이 소리로 먼저 새어 나오는 순간. 작가는 그 기척을 화면 속에 붙잡아 두려 한다.

Frou-frou 살랑살랑- Ⅰ, 2025, Oil and acrylic on canvas, 162.2 x 97 cm

진주가 ‘불안’을 드러내는 방식

진주는 우아함의 상징처럼 보인다. 흠 없는 둥근 형태, 정돈된 빛. 그런데 작가가 붙잡는 건 그 ‘완벽함’이 만들어내는 불안이다. 아주 작은 접촉만으로도 소리가 또렷해지고, 고요는 그 소리를 더 크게 키운다. 그 울림은 우리가 덮어두었던 불완전함을 건드린다.

이미호 작가의 화면에서 진주는 그래서 더 아름답기만 하지 않다. 우아함과 불안이 같은 자리에 떠 있다. 가까워질수록 커지는 미세한 긴장, 말로 다 정리되지 않는 감정의 파편이 진주의 움직임을 따라 번져 간다.

Tea ware-Ⅱ, 2025, Oil and acrylic on canvas, 100 x 65.1 cm

비처럼 쏟아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

작가는 비가 오기 전의 고요를 좋아한다고 적는다. 공기가 무거워지고, 흙 내음이 유난히 짙어지는 순간. 잊고 있던 감각이 하나씩 깨어나는 시간이다. “그림을 통해 내 주변의 존재들을 일깨우고 싶었다”는 말은, 그 고요를 그냥 지나치지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린다.

그 마음이 “진주를 빗방울처럼 쏟아내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비와 달리 진주는 스며들지 않는다. 둥근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표면 위를 굴러가고, 부딪히고,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어떤 감정은 흘러가 버리지만 어떤 감정은 남아 다시 부딪힌다. 작가는 그 ‘남는 마음’의 성질을 진주의 움직임으로 보여준다.

Sound of night – Lantern, 2025, Mixed media on canvas, 53 x 45.5 cm

유리 위에서 더 또렷해지는 긴장

진주가 유리 위에 놓이면 장면이 달라진다. 얇고 투명한 사물은 예쁘지만, 동시에 깨질 듯 불안하다. 그 위에서 진주는 어디로 튈지 모른 채 또르르 굴러가고, 아주 작은 접촉도 더 날카롭게 느껴진다. 작가는 이런 조합이 관계의 불완전함과 감정의 진폭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고 말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은 더 쉽게 반응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파도가 생긴다. 유리 위를 굴러가는 진주가 떠올리게 하는 ‘맑고 불안한’ 울림은, 친밀함 속에 깔린 미세한 긴장을 닮아 있다. 아름답지만 아슬아슬하고, 다정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태. 이미호 작가는 그 상태를 화면의 리듬으로 옮긴다.

Stainless[goblet]-2, 2026, Oil and acrylic on canvas, 45.5 x 27.3 cm

샹들리에, 반짝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상상

작가는 진주가 튀어 오르는 순간을 탄산의 기포에 비유하며, 차가운 온도와 톡 튀는 소리, 반짝임의 잔상이 함께 떠오른다고 적는다. 그래서 작품은 눈으로만 읽히지 않고, 잠깐 귀와 피부의 기억까지 건드린다.

그리고 이 감각은 샹들리에로 단단하게 모인다. 멀리서 보면 완벽하게 빛나는 장식이지만, 작은 기척에도 미세하게 흔들리며 찰랑이는 소리를 낸다. 보지 않아도 “반짝이는 것들이 부딪히고 있다”는 사실이 짐작되는 순간이다. 작가는 그 견고함 뒤에 있는 불안을 떠올린다. 충돌을 견디던 것이 끝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상상,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공허함까지—이미호 작가는 우아함과 불안이 함께 존재하는 시간을 화면에 남긴다.

작품 앞에 서면 이런 질문이 남는다.
완벽해 보이던 것들이 작은 충돌로 흔들릴 때, 내 안에서는 어떤 감정이 가장 또렷하게 울리는지.
그리고 그 울림은 어떤 관계에서 시작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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